[하고싶은말] 어른아이1

 

 

우리 엄마는 날 가질 때, 예쁜 고구마를 손에 쥐고 있는 꿈을 꿨다고 했다.

그렇게 난 우리 가족의 사랑스러운 둘째딸로 태어났지만,

아들을 원했던 어른들 덕분에 엄마는 셋째까지 가져야 했다.

엄마는 우리는 그래도 성격들이 순한 편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있어 자신은 너무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모두가 어려웠다던 90년대, 삼남매를 키우는 것은 정말 막막한 일이었을 것이다.

20대의 어리고 여렸던 여자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에서 이제 막 사회에 발 딛은 한 남자와 단둘이 우리를 키워나갔을 생각을 하니

스물여덟의 나는 지금에서야 그 상상에 마음이 먹먹해져 온다.

 

엄마를 배웅하고 오는 길, 문득 지하철 승강장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찌 이리 크게 되었나, 생각에 잠겼다.

 

저번 주 토요일 '어른아이' 수업을 이후로 나는 또다시 현실을 놓쳐버린 기분이다.

자꾸 과거의 어느 장면들로 돌아간다.

 

엄마는 어렸고, 나는 아이였다.

유치원에 엄마들이 왔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어른들 앞에서 질문을 한다.

주변 친구들이 다들 손을 들어 대답할 때, 나는 자신이 없었는지 한번도 손을 들지 못한다.

집에 돌아오는 길,

엄마는 화가 났는지 내 손을 잡아주지도 않고 혼자 쌩하니 집에 걸어간다.

그 뒷모습에 내 마음은 초조해졌고 집에 도착해서도 엄마는 혼자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는 나오지 않는다.

나는 울면서 아랫집으로 내려가 엄마가 방에서 안나온다고 이야기한다.

아줌마가 사탕 하나를 쥐어준다.

 

내가 기억하는 장면은 여기까지다.

그 이후에 엄마가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화를 풀고 다시 나에게 잘해주었겠지만

내 마음 속에 있는 어린아이는 그 때의 그 두려움을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한 장면을 떠올리기 시작하니까 다른 장면들도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뇌는 모든 걸 기억하고 있다더니, 정말인가보다.

 

인생 속의 찰나, 정말 찰나의 순간들인데 그걸 파기 시작하면

왠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눈덩이에 파묻힐까봐 두렵기도 하다.

아직 마주보지 못한 저편의 기억들이 어떤 무게로 다가올지 무섭고.

그래도, 봐야겠지.

그래야 비워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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